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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일상

[독일 일상 이야기] 나의 부엌 설치 투쟁기 1

직장을 옮기면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급하게 새로 얻게 된 집은 따끈따끈  갓 지어진 새집(Neubauwohnung). 집세도 저렴해 바로 계약을 해버렸습니다. 비록 부엌도 없이 텅텅 비어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습니다. 출퇴근 왕복 2시간 가까이가 걸리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어차피 자가용 한 대 장만할 거니까, 그때까지만 참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게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이제 그 얘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 진짜 아무것도 없다. 

독일에서 집을 구해보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지금 이사 온 집도 부엌자리에는 벽에 사진처럼 덜렁 온수, 냉수관 그리고 배수구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전등을 달 자리는 정말 이렇게 생겼습니다.

 

전등을 달려면 천장에 구멍을 직접 뚫어 고정시켜야 됩니다.

 

  •  비싼 인건비의 함정: 그래서 직접해야 한다!

 

독일에서는 벽에 페인트칠을 한다거나 부엌을 설치하는 경우에 기술자를 부르게 되면, 어마어마한 인건비를 계산해야 됩니다. 한 번은 50크바 아파트 벽과 천장 페인트칠을 위해서 비용을 알아본 적이 있었는데요. 1500에서 2000유로 사이를 요구하더라고요. 그래서 3일에 걸쳐서 직접 했었지요.  그렇다면 부엌설치에 기술자를 부르게 되면 대충 얼마 정도 지불해야 될까요?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제법 간단해 보이는 부엌 설치에도 최소 1000유로는 지불해야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고난이 닥쳐도 직접 설치해 내기로 다짐합니다.

 

  • 이사하기 전 부엌 주문하기 : 그래서 어떤 걸 주문해야 된다는 거지?

인터넷에서 Küche(부엌)로 검색을 해보면,  다양한 가격의 모델을 볼 수 있습니다.

200에서 7000유로까지 그리고 일자형, U 자형, 정말 다양해서  뭘 선택해야 될지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대충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인덕션, 냉장고, 오븐 등등 풀옵션으로 살 것이냐, 아니면 전자기기 없이 부엌껍질만 살 것이냐입니다.

풀옵션은 부엌가구가 전자기기에 맞춰져서 세팅이 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통일감을 줄 수는 있는 반면, 배송시간이 4주에서 8주 정도로 상대적으로 길고, 한 번에 큰돈을 지불해야 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풀옵션으로 사면, 셀프 설치에도 3000유로에서 4000유로는 그냥 우습게 나가죠. 부엌가구만 살 경우에는 일단 부엌가구만 맞춰놓고, 자기가 원하는 옵션을 채워 넣을 수 있죠. 하지만 사이즈가 안 맞을 수도 있어서 나중에 곤란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저는 간단한 미니부엌을 셀프로 또 최대한 저렴하게 설치하는 게 목표인지라, 일단 부엌껍질만 사서 기존에 있던  전자레인지, 에어프라이어기를 채워 넣기로 합니다. 그리고 빵이나 쿠키는 밖에서 사 먹는지라, 오븐은 그냥 생략하기로 합니다. 또 지금 가지고 있는 냉장고는 몇 달 있다가 크기가 큰 것으로 바꾸게 될 거 같아서, 일단은 어디 넣지 않고 밖에 빼놓기로 합니다.  문제는 셀프로 설치하기 힘든 싱크대, 인덕션인데요. 이것 때문에 한참 고민하다가, 두둥 마침내 싱크대가 붙어있어 보이는(?) ㅇㅋㅇ 모델을 발견합니다. 인덕션은 그냥 탁자에 올려놓고 쓸 수 있는 모델이 있거든요. 그게 좀 더 저렴하기도 하고요. 그러면 부엌 설치하면서  톱질을 해야 되는 사태는 면할 수 있게 된 거죠. 게다가 보통 부엌을 주문하면 도착까지 보통 3주, 많게는 5주도 걸린다고 하는데요. 이 모델은 일주일도 안 걸려 도착한다고 해서 당장 주문해 버렸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펼쳐질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말입니다. 뭐든 제품을 주문하려면, 제품 설명을 자세히 읽어봐야 되는데 말이죠. 

그래서 여기까지의 비용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부엌껍질 373유로+ 배송비용 55유로+ 인덕션 168유로(따로 구매)+설치비 0유로(셀프)= 596유로

식기세척기는 부엌 설치되어 가는 거 보면서 사이즈 맞게 주문하기로 합니다.

 

  •  Day 1 : 이사 후 본격 조립 시작하기 그리고 좌절...

11월 1일에 이사를 했는데, 그날은 공휴일이라 부엌이 배송되지도 않았고, 또 너무 피곤했던지라 그냥 자기로 합니다. 그리고 날이 밝아서 두둥 11월 2일. 오전에 배송기사에게서 아주 반가운 전화가 옵니다. 그리고는 이른 시간부터 거실에 커다란 박스들이 쌓입니다. 박스들이 쌓여 있는 모습이 너무 위압적이라, 일단은 진정하기 위해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도대체 뭐부터 뜯어서 조립해야  이 거실이 난장판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 짓을 오래 끌 수 없다는 생각에 일단 다 뜯어보기로 합니다만... 박스들이 너무 무겁습니다. 어쨌든 이틀 안에는 끝내야 된다는 생각에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어이가 없지만), 전동 드라이버를 들어봅니다. 대충  부엌 밑부분 조립이 완성이 되어서 상판을 올리려고 하는 순간, 이제는 아아를 마셔도 앞이 여전히 깜깜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싱크대나 수도꼭지가 들어가야 될 자리가 뚫려있지가 않은 거였습니다!!! 그러니까 싱크대, 수도꼭지를 연결해야 할 자리를 직접 톱으로 잘라내야 되는 상황이 된 거죠. 

검은펜으로 그린 부분에 싱크대가 들어가야 되는데, 보시다시피 직접 잘라야 합니다.

 

일단 저 상태에서 소파에 앉아 곰곰이 다시 생각을 해봅니다. 상판에서 싱크대 자리를 잘라내려면 전기톱이 필요할 텐데, 이걸 또 직접 사려면 적지 않은 돈이 깨지고, 그렇다고 싱크대 없는 부엌을 만들 수도 없고..  주문 내역을 제대로 보지 않은 저 자신을 탓해보지만 이미 무를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혼자 다 해내야 됩니다. 이럴 때 의지할 수 있는 곳, 유튜브!  유튜브에서 Küche einbauen (부엌 조립하기)를 검색해 봅니다. 거기서 전문가들은 Stichsäge 를 이용해서 싱크대나 인덕션이 들어갈 자리를 잘라내더군요. 그리고 수도꼭지가 연결될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Lochsäge가 필요하고요.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인덕션이 들어갈 자리도 같이 파버리기로 합니다 . 이미 저녁 8시가 지나서 Baumarkt (철물점)에는 다음날 가기로 하고, 일단은 기존에 주문했던 저렴한 인덕션 반품 신청을 하고, 조립용 인덕션을 새로 주문합니다. 그리고는 너무 피곤해서, 소파에서 그냥 뻗어버립니다. 

  TO BE CONTINUED

 

부엌 조립 첫날에 거실 박살난 광경, 이 난장판 옆에서 잠이 들었다.